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강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2026.04.19
김 하상바오로 신부
한 노인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앉아 있습니다. 외지인이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노인에게 묻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러자 노인이 되묻습니다. "자네가 떠나온 곳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던가?" "이기적이고 고약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곳을 떠나왔습니다." 노인이 대답합니다. "자네는 이곳에서도 똑같은 사람들을 만날걸세!" 얼마 후 또 한 외지인이 다가와 노인에게 똑같이 묻고, 노인 역시 똑같이 되묻습니다. "자네가 떠나온 곳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던가?" "제가 떠나온 곳의 사람들은 착하고 호의적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떠나오기 힘들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합니다. "자넨 이곳에서도 똑같은 사람들을 만날걸세!" 가톨릭 신자가 된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 이유는 많겠지만 대부분은 신자가 되기 전에 가진 기대에 못 미치는 교회와 신자공동체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됩니다. '가톨릭은 다를 줄 알았는데 성당도 별반 다른게 없구나!'하며 냉담교우가 되는 사람들, 혹은 가톨릭 전례나 가르침에서 영적인 갈망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사제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 혹은 새로 온 교우를 환영하지 않는 공동체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채워지지 않은 기대와 상처와 실망으로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어떨까요? 오늘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이 이와 같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들의 도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구세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부서진 예루살렘을 등지고 상처와 실망을 안고 돌아섰습니다. 한때 예루살렘에서 그들이 꿈꾸었던 새로운 삶, 곧 로마제국의 억압과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구세주와 평화와 희망을 줄 교회는 예루살렘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워지지 않은 기대와 상처와 실망을 안고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는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꼭 거쳐야 하는 여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하느님과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과 교회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교회를 통해 기도하고 찾는 것은 많은 경우 그 시작에 있어서 성숙되지 못했거나 이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볼까요? 참된 부모는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계속해서 보채는 아이들을 매로 훈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것을 주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바라고 찾던 것은 하느님이 주시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힘과 권력으로 또 다른 폭력인 로마정권에 맞서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은 '주님, 주님'하며 기도했지만 그들 마음에 주님은 다른 하느님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복음에 이름이 언급된 클레오파스와 우리 각자의 여정입니다. 이 길은 어느날 순식간에 얻는 깨달음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이 되어 걷기 시작하지만 실망과 상처에 정신이 팔린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교회와 신앙공동체가 그럴 수 있느냐고 불평을 터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받은 아픔과 상처를 동행에게 털어놓습니다. 하느님은 그렇지 않다고,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어떻게 신자들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열변을 토하지만 동행은 그저 듣기만 합니다. 아직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왔던 구세주와 교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입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는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승리가 아닌 고통, 폭력이 아닌 사랑만으로야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예언자들이 가르친 구세주가 바로 당신 자신임을 인내를 가지고 알려주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여정 안에서 오랜 기도와 말씀에 대한 묵상, 그리고 고통과 시련을 내 몫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걷기 시작할 때 구원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안아야 할 십자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나의 기대에 맞는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을 등지고 이방인들의 도시인 엠마오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망과 상처를 안고 도망치듯 떠나지는 않습니까?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예루살렘에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엠마오로 가는 길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신앙의 과정이지만 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복음의 제자들처럼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사그라든 마음을 열정으로 북돋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실망과 상처에 매여있을 때라도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말씀으로 성찬례로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며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같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고통없이 모두가 행복한 곳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십자가와 고통을 통해 부활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교회 지도자들과 모든 신자들이 정의롭고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상처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동행하시는 예수님께 의탁하며 용기를 내어 한걸음씩 나아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몬과 다른 제자들을 만날 것이며, 우리 삶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에서 우리도 마침내 부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