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길이다(부활 제6주일)
강론

희망이 길이다(부활 제6주일)

2026.05.09
Fr. 김성래 하상바오로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사도 8,8). 필리포스는 그리스도를 선포했고, 군중은 그의 말에 모두 한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며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았습니다. 사실 더러운 영들이 큰소리를 지르고 나갔고, 많은 이가 하느님 안에서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아름다운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큰 기쁨을 봅니다. 30년만에 우리가 이곳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새성전 건축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지난 30년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하여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모시고 하느님 아버지 집에 한 부분을 차지할 쓸만한 돌, 겸손한 돌, 살아있는 돌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쓸모없는 것이 없고, 버릴 것 없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사제는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여러분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많은 이가 하느님의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 집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작에 어울리는 주제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희망은 무엇입니까? 중국 문학가 루쉰의 말을 들어봅시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은 길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곳이지만 누군가 앉아서 기다리는 대신 걷기 시작하면 작은 오솔길이 되고 더 많은 사람이 따라 걷게 되면 희망이 됩니다. 우리에게 새성전 건축도 가보지 않은 길, 알려지지 않은 길, 두려움과 설레임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조금씩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그 길에 들어섰고 이제 우리 모두가 그 길을 함께 걸으며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없는 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길이 되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 과정이 우리에게 꼭 필요했습니다. 희망의 순례자로서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며 인내하면서 우리는 예수님 복음을 깨닫고 살아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2독서에서 하는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이제 사람들이 우리에게 새성전에 대해서, 무엇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복음의 기쁨을 드러낼지 물어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희망의 이유를 알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며, 바른 양심으로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난 겨울 그 희망의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미국을 떠나고 14년만에 제게 제2의 고향과도 같던 클리블랜드를 방문했었습니다. 저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돌봐주었던 많은 분들이 그대로 계셨습니다.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이 많은 이가 떠나고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공동체는 참으로 작아져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커서 떠난 빈자리에는 14년 세월을 더한 부모들만이 쓸쓸하게 남아 성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클리블랜드는 2008년부터 본당 통폐합 논의가 있었습니다. 클리블랜드 한인본당도 그 속에 있었고 지역에 있던 4개 본당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에게 왔던 몇 번의 위기와 도전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본당을 통폐합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방향에서 이웃에 문닫는 본당을 인수하여 그곳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가지 않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기회를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이 안주하기를 원했고 그것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었던 당연한 결정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클리블랜드 한인본당은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러 다시 그곳을 찾아간 저는 희망을 찾지 못해 너무 슬펐습니다. 새성전 건축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인력과 재원을 쏟아붇는 일이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가지 않던 길을 함께 걸으며 두려움도 있지만 설레임도 꼭 붙들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로마 8,28). 이제 우리는 그 길에서 가장 막바지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각자의 집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자 우리 모두의 집을 잘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기쁨이자 우리 신앙의 중심이 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희망하고 위로받고 기뻐하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곳에서 환영받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곳에 큰 기쁨이 넘쳐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