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산
강론

두번째 산

2026.04.24
김 하상바오로 신부
우리는 모두 '첫번째 산'을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인생이라는 산을 올라갑니다. 나와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것은 때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결과만 좋다면 과정을 굳이 살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이기적 자유와 행복,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번째 산을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길은 나의 노력과 더불어 얼마간의 운과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경우 방심한 한순간에 실패하거나 무력감, 회의감에 빠지는 것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인생을 헛 살았다고 후회하는 지점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37) 이 질문은 예수님을 못 박은 사람들의 질문이면서 동시에 첫번째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고 인생의 의미를 놓쳐버린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욕심으로 움켜진 손을 어쩔 수 없이 펼쳐야 할 때, 자기 자신으로 가득찬 마음을 어쩔 수 없이 비울 때에만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다가와 우리 손을 잡으실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실패와 고통이 구원과 생명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죄짓지 않는다면, 실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이나 타인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죄와 실패는 우리를 길 잃은 양이 되게 하고 그제서야 우리는 목자가 누구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1베드 2,25). 이제 우리는 '두번째 산'을 오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나만을 위한 성공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와 헌신으로 바뀝니다. 나의 행복만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도 중요함을 깨닫고 나만의 성에 갇히는 대신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합니다. 한마디로 이기적 행복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기쁨을 추구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두번째 산을 오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첫번째 산을 오르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한 도둑'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시려고' 두번째 산을 오르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기꺼이 종이 되시었고, 양들의 목자께서 양떼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의 병이 나았습니다"(1베드 2,24). 이제 우리도 두번째 산을 올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행복과 성공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위한 헌신과 신앙공동체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두번째 산을 오르는 길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1베드 2,20-21). 저는 특별히 지난 4월 21일 선종 1주기를 맞이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올립니다. 그분의 삶과 겸손, 마지막 말씀과 행동은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두번째 산을 오르셨습니다. 우리도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어 두번째 산을 오릅니다.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기쁨과 보람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며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 23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