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리칸 풋볼을 보고 있으면 전쟁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수만 해도 양쪽이 100여명 가까이 되고 스탭과 의료진, 심판 등을 포함하면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말 그대로 풋볼을 던지고 받으며 땅따먹기를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여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을 뿐만 아니라 게임이 시작되기 몇 시간전부터 헤드 코치가 해임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입니다.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지혜롭고 강하고 확실히 있는 것이 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속된 기준으로 지혜롭고 유력하고 가문이 좋은 사람 대신에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 약한 것,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없는 것을 선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1코린 1,29) 위해서 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잘 아십니다. 인간의 본성은 다른 인간을 이기고 그 위에 서서 자랑하고 싶어하며 그것이 사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 바탕에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있습니다. 1등만이 최고이고 그 이하는 가치가 없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1859년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적자생존'이라는 말도 없고 심지어 '적자(適者)'라는 단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이 표현이 소개되면서 무자비한 경쟁에서 가장 우월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잘못된 개념이 퍼졌습니다.
가톨릭 교리는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진화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브라이언 헤어와 바네사 우즈의 '친절의 생존'에 따르면 자연계에는 우월함이 없으며 모든 생명체는 서로 돕고 공존합니다. 한마디로 손을 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친밀하게 만나고 다른 사람에게 친구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진화한 인간 종이 되어가고 있으며 세상 누구보다 친절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